테러 보복 다시 테러…출구없는 전쟁에 77만명이 희생됐다 [글로벌 이슈 plus]
9·11 테러 20주년…지금도 美는 `아프간 늪`에
美, 9·11 주범 빈라덴 쫓아
아프간 침공하며 보복 개시
알카에다 소탕 성공했지만
IS로 테러 네트워크 되레 커져
이라크·시리아로 전선 넓어져
美 전쟁비용 7천조 밑빠진 독
바이든, 카불테러 즉각 응징
美 철수해도 전쟁 계속될듯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에 있는 9·11 메모리얼 뮤지엄을 찾았다. 현대사에 가장 비극적인 테러로 기록된 9·11이 발생한 지 2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회한에 사로잡힌 모습의 노신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수영선수 출신 프랭크 매클로이(73)였다. 그는 이곳에서 31마일(약 50㎞) 떨어진 뉴저지주 와이코프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렵게 말문을 연 매클로이는 "9·11 테러로 수영을 가르치던 두 제자를 잃었다"며 "20년 만에 처음 이 장소에 왔다"고 말했다. 차로 50분 거리인 이곳을 다시 찾는 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텍사스주, 플로리다주에서 찾아온 조카들에게 20년 전 일을 알려주기 위해 용기를 냈다. 당시 각각 6세, 3세였던 조카들은 이제 26세, 23세 성인이 돼 70대가 된 삼촌과 함께 메모리얼 뮤지엄을 방문했다.
그의 제자였던 앤드루 오그래디는 2977명의 9·11 테러 희생자 중 한 명이다. 뉴저지주에서 자라 캘리포니아주 UCLA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월가의 투자은행인 샌들러 오닐&파트너스에서 매니징 디렉터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사고 당일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사우스타워 104층에서 근무 중이었다. 2002년 5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그는 최후의 순간, 약혼녀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을 전했다.
WTC가 있었던 자리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정사각형 조형물 2개가 들어섰다. 이 조형물 둘레에는 희생자 2977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현장에는 유가족, 지인들이 희생자 이름 위에 꽂아둔 하얀 장미가 눈에 띄었다.
장미가 꽂혀 있는 희생자들의 사연을 찾아봤다. 캐서린 퍼트리샤 설터는 세계적 보험회사인 AON의 임원이었다. WTC 사우스타워 102층에서 근무 중이었던 설터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 시카고, 신시내티에 있는 상급자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마지막까지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정작 본인은 탈출할 시간을 놓쳤다.
WTC 최고층 카페테리아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사라 칸 이름 위에도 하얀 장미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칸의 부고를 찾아보니 '초고층에서 일했지만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극단적 테러 조직이 알카에다에서 이슬람국가(IS)로 확대되면서 미국 정보당국의 경계 대상은 되레 증가했다.
미국은 테러 종식을 위해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쏟아부었지만, 사실상 출구 없는 전쟁을 지속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9·11 테러 배후조직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미군은 아프간에서 알카에다를 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내세웠다.
또 테러 조직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필리핀, 예멘, 소말리아 등으로 확전했다. 아울러 대량살상무기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전격 침공했다. 2014년에는 IS 확산을 막으려고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은 9·11 테러에 대한 강력한 응징 계획에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을 치렀다. 이로 인해 막대한 전쟁 비용을 투입해야만 했고, 희생자들은 급격히 불어났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전쟁 비용은 국방부와 국무부의 해외비상운영비, 전쟁 차입이자, 의료비, 테러예방 예산, 전역자 평생 의료비 지원금 등을 포함해 모두 6조4090억달러(약 7000조원)에 이른다. 이 중에 3분의 1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2조2610억달러)으로 추산된다.
지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에서 희생된 사망자는 최소 77만명으로 집계됐다. 아프간에서 미군 2304명, 아프간 현지 군인과 경찰 6만4124명, 일반 시민 4만3074명 등 모두 15만705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에서는 이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27만6363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전쟁으로 집을 잃고 국내를 떠돌거나 해외로 난민을 신청하는 사례도 급증했다. 이 같은 전쟁 이재민은 아프간 590만명, 이라크 920만명, 예멘 460만명, 시리아 710만명을 포함한 8개 국가에서 3780만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오랜 전쟁을 치렀던 아프간에서 20년 만에 완전 철군을 준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과 2020년 2월 비밀리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올해 5월 1일 철군을 약속했고, 이를 이어받아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월 31일까지 완전 철수를 강행하면서 전쟁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전쟁에서 더 이상 미국 젊은이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한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 전투 병력도 연내 철수시키기로 했다.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병력 재배치까지 고려한 포석이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 과정은 험난하다. 아프간 수도 카불을 단숨에 함락한 탈레반이 공포통치를 부활시키고 예정대로 미국의 철군을 압박하는 가운데 IS 조직이 지난 26일 카불공항에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해 미군 13명을 포함해 2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IS는 추가적인 테러도 예고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테러 배후인 IS를 끝까지 찾아내 응징하겠다고 밝혀 앞으로도 테러와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있다.
이렇게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년 전 세상을 떠난 오그래디, 설터, 칸이 바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 비극을 중단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점이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 워싱턴 = 강계만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신문 21.08.30 A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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