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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6 - 매경 오피니언

泪祕.H 2021. 7. 31. 21:36

팬데믹 터널 끝엔 기후전쟁 기다린다 [매경데스크]

탈탄소 경제 주도권 놓고
美·英·EU 치열한 경쟁 예고

기업·소비자 부담 설명하고
기후무역 분쟁 대비해야

이은아 기자

'핏 포 55(Fit for 55)'.

중년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 이름 같아 보이는 이 계획은 유럽연합(EU)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건 청사진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화석연료 경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다음 세대에 건강한 지구와, 자연을 해치지 않는 좋은 일자리와 성장을 남겨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이 계획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량을 조사해,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으면 초과분에 2026년부터 관세를 물린다는 것이다.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도 사실상 금지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 산업계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다. 매년 1조원 규모의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을 정도다.

물론 EU의 계획이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나라마다 다른 환경규정과 탄소 배출량 산정 방식, 보조금 등은 논란거리다. 어떤 형태로든 기업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무역분쟁은 불가피하다. 이미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각국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막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환경규제는 기업의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소비자들이 휘발유 자동차를 포기하거나, 난방비를 더 내는 식으로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2018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경유세 인상 반대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

스위스 국민은 지난달 국민투표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법안을 찬성 48.4%, 반대 51.5%로 부결했다.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자동차 연료에 대한 세금을 올리고 항공권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법안이었다. 스위스 국민은 법안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염려했다. 합성 살충제 사용 금지 법안도 함께 부결됐다. 살충제 사용 금지가 식자재 가격 상승과 식품 가공업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운수산업 탄소 배출 규제와 가스 연소 주택난방 금지 법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ESG(환경·책임·투명경영) 투자에 앞장섰던 세계 최대 규모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지난 4월 "환경이나 ESG라는 명분을 위해 수익을 희생할 수는 없다"며 ESG 투자에서 한발 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세대 후에나 효과가 나타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당장 대가를 치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실감케 하는 사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를 이끄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럽의 '핏 포 55'는 세계무역질서의 재편의 예고편일 뿐이다.

EU는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탈탄소 경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연간 100억유로(약 13조53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거둬들여 유럽 기업을 보호하고 막대한 재정지출을 메우겠다는 계산이다. '천사의 탈을 쓴 무역장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했을 정도로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탄소국경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영국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를 주최하면서 기후변화 리더십을 발휘하려 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 무역전쟁일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세계 질서 변화와 늘어날 부담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사회적 합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은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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