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서민주거와 너무 먼 대선주자들-매경211005
윤석열 후보 청약통장 실언
이재명 후보 대장동 설계 의혹
대선주자들 민생 부르짖지만
서민주거에 진정 관심있나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옥탑방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한 토론회에서 "옥탑방을 아느냐"는 질문에 난감한 표정으로 "모르겠다"고 답하면서다. 바로 "옥탑방을 모르는 것은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건물 옥상 위 옥탑방은 대표적인 서민 주거시설이다. 옥탑방에 살아본 이들은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덥고, 겨울에는 살인적으로 추운 열악한 환경에 치를 떤다. '귀족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가락시장에서 배추를 나르는 등 서민 친화적 행보에 공을 들이던 이 후보에게 옥탑방에 대한 무지는 치명타를 안겼다. 그런데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도 옥탑방을 몰랐다고 밝히면서 '서민 대 귀족'으로 대선구도를 끌고 가던 노 후보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서민'이라는 어젠다를 선점하려고 쟁탈전을 벌였지만 두 후보 모두 서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갑자기 '옥탑방'을 소환한 것은 이번 대선 정국 역시 서민들과는 너무 동떨어진 채 흘러가고 있어서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주택청약통장'과 관련해 설화에 휩싸였다. 윤 후보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2차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주택청약통장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느냐"는 유승민 전 의원 질문에 "저는 집이 없어서 만들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이라고 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황당한 답변이었다. 해명은 한 술 더 떴다. 윤 후보는 "청약통장을 모르면 거의 치매환자"라며 무리수를 뒀다가 더 큰 비난을 자초했다. 군필자에게 주택청약 가점을 주겠다는 자신의 공약 역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청약통장은 무주택 서민이나 실수요자들이 내 집 마련을 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1977년 도입됐으니 역사도 40년이 넘었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올해 8월 말 현재 2815만명.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60% 이상이 청약통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청약통장 설화'는 '부정식품을 먹을 자유' '손발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실언 뒤에 나온 발언이어서 더 파장이 컸다. 기본 상식인 청약통장을 모른다고 해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가 꼭 부동산전문가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평생 검사일만 하던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몰라도 된다는 식 발상은 곤란하다. 서민의 애환을 모르는 대선주자와의 거리를 확인할 때 서민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설계했다는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도 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언론인의 4000억원 배당금, 1000만원 투자로 120억원 수익 등 화천대유의 요지경 돈잔치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이 엮인 초대형 부동산 비리는 서민들 삶과 멀어도 너무 멀다. 이 지사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그가 몸통이라는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4일 "민간 개발이익이 과도해 국민 여러분의 많은 상실감과 소외감이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이 지사 책임론과 돈벼락에 대한 허탈감을 토로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지금 서민들은 부동산 지옥에 신음하고 있다. 현 정부가 4년간 규제와 세금폭탄을 쏟아부은 결과 집값은 폭등했고, 임대차 3법 강행으로 전세대란은 심화됐다. 국민 4명 중 1명이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부동산시장 안정'을 꼽을 정도로 국민은 부동산 해결책에 목말라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주자들 마음속에 서민은 없다. "집 걱정을 없애드리겠다"며 진정성 없는 공약만 쏟아낼 게 아니라 주택 문제로 고통 받는 서민들 삶부터 들여다보길 바란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신문 21.10.05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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