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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두면 좋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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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대에 걸쳐 왕후와 태후 고구려의 여걸 우씨 왕후-매경 임기환 입력 : 2016.12.08 08:59[고구려사 명장면-8] 우리 역사에서 55년 동안 왕후와 태후로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여인이라면 누가 떠오르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대 어떤 여걸 못지않은 고구려 우씨 왕후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197년 5월 고국천왕이 재위 19년 만에 사망하였다. 왕후 우씨는 왕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밤에 몰래 궁궐을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왕의 첫째 동생 발기의 집이었다. 그는 발기에게 "왕의 아들이 없으니 마땅히 당신이 왕의 뒤를 이어야지요"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발기는 고국천왕이 죽은 것을 모르고, 밤에 찾아온 우씨의 행실을 비난하였다. 무안해진 우씨는 둘째 동생 연우의 집으로 갔는데, 연우는 의관을 갖추고 예를 다해 환대하였다. 우씨가 왕의 죽음을 알리자..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0. 16.
  • 대제국 고구려의 기틀은 공공성 갖춘 인재들 덕분-매경 [고구려사 명장면-7] 고구려 8대왕의 왕호는 신대왕(新大王)이다. 즉 '새 대왕'이다. 새로 왕위에 오르면 누구나 '새 왕'이 될 터인데, 왜 이 왕에게만 이런 왕호가 붙었는지 음미해 볼만하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생각할 때 그 전과는 다른 새로움이 많았기 때문에 특별하게 '새 대왕'이란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신대왕의 행적을 통해 다소 드러난다. 165년(차대왕 20년) 차대왕이 무도하여 신하와 백성들이 따르지 않자, 명립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하였다. 이에 신하들은 차대왕의 동생 백고를 왕으로 모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위를 냉큼 받지 않았다. 세 번이나 사양한 뒤에야 왕위에 올랐다. 그런 점에서 태조대왕이 살아 있음에도 왕위를 양위받은 차대왕과는 그 즉위 과정부터가 달랐다. 신대왕..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0. 16.
  • [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중인(中人)의 전기,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매경 조선후기 유재건`이향견문록` 308명의 전기, 10권으로 구성 김정호·서기·김홍도·조수삼등 중인부터 천민·여자·스님까지 다양한 신분의 인물얘기 수록 중인층 이하도 양반과 대등한 평가 받아야함을 은연중 강조 이책 편찬의도·인물 떠올리며 중인문화 중심지 서촌 가볼만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서촌 지역은 조선시대 중인(中人) 문화의 중심 공간이었다. 양반들이 북촌에 집단 거주한 반면 중인들은 서촌이나 청계천 일대에 주로 거주하였다.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했던 계층인 중인은 주로 중앙관청에 근무하면서 행정 실무를 맡은 서리(胥吏)나, 기술직에 종사한 역관, 의관, 율관 등을 지칭하였다. 양반의 소생이지만 첩의 아들인 서얼, 지방의 향리도 중인에 포함되었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0. 2.
  • 미쓰비시重 자산 압류에…日 "매우 유감, 韓공사 초치"-매경210929 한일관계 더 냉각될 듯 일본 정부가 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한국 법원의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 명령에 대해 항의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 외무성은 28일 주일 한국대사관 차석 공사(김용길 정무공사)를 초치해 즉시 적절한 대응을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산 매각 명령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한국 정부에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과 그에 따른 사법 절차들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이날 "한국 측이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는 피해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을 당연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번에 이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도 일본 측의 국제법 위반..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30.
  • 고구려 국내성 천도 언제? 삼국사기도 믿기 어렵네-매경 임기환 입력 : 2016.11.10 15:01 [고구려사 명장면-6]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왕이 처음 도읍한 곳은 졸본(卒本)이다. 졸본의 위치는 오늘날 중국 요령성 환인시(桓仁市) 일대로 보는데 거의 이견이 없다.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남하하여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에 있는 산위에 성(城)을 쌓고 도읍을 세웠다." 여기서 서쪽 산위의 성이 지금 환인시 오녀산성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일대에는 고구려 초기 적석총이 많이 있어, 첫 도읍지였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후 고구려는 국내성(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국내성은 지금 중국 길림성 집안시 일대이다. 집안에 가보면 국내성과 산성자산성을 비롯하여 7000여 기의 고구려시대 고분이 온 도시 여기저..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23.
  • 낙랑공주가 살았던 그곳, 요동·요서·한반도 중 어디?-매경 임기환 입력 : 2016.10.27 15:01 [고구려사 명장면-5] 때는 32년 4월, 낙랑국의 도성. 군사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낙랑왕 최리(崔理)에게 고구려군이 바로 성문 앞까지 쳐들어왔다고 보고하였다. "아니 자명고각(自鳴鼓角)이 어찌 울리지 않았단 말인가?" 최리는 부랴부랴 무기고로 달려갔다. 북은 찢겨 있고, 뿔피리는 깨져 있었다. 이내 자신의 딸이 저지른 것임을 깨닫고,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딸을 찾아내 죽이고는 성문을 열고 고구려군에 항복하였다. 애비로서 어여삐 키운 딸을 죽일 때는 결코 딸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딸을 충동해서 자명고각을 부수게 한 고구려 왕자 호동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내가 저 녀석을 믿고 사위 삼았다가 딸도 잃고 나라도 잃었구나". 그런데 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20.
  • 또 다른 시조, 태조대왕-매경 임기환 입력 : 2016.10.14 15:01 [고구려사 명장면-4] 시조 주몽왕(동명성왕) 말고도 시조처럼 불린 왕이 있다. 바로 태조대왕이다. 태조(太祖)라는 시호는 보통 왕조를 개창한 왕에게 붙여지는 칭호다. 고구려에는 엄연히 주몽이라는 시조가 있는데, 주몽왕 외에 태조대왕으로 불린 왕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현재 삼국사기에 전하는 고구려 왕 계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뜻한다. 사실 태조대왕은 여러 가지 의문이 드는 왕이다. 일단 수명부터가 남다르다. 고구려에서 가장 오래 산 왕이라면 장수왕을 떠올리기 쉽지만 기록상으로는 119세까지 산 태조대왕이다. 왕 노릇도 보통 사람 수명보다 훨씬 긴 94년간이나 했다. 그런데 태조대왕만 오래 산 것이 아니라 그의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태조대왕 뒤를 이은..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20.
  • 고구려 건국 시조는 누구? 주몽인가? 동명인가?-매경 임기환 입력 : 2016.09.29 15:06[고구려사 명장면-3] 고구려의 건국 시조는 주몽왕(朱蒙王), 또는 동명왕(東明王)으로 알고 있다.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天帝) 혹은 해모수이며, 어머니는 강의 신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이다. 혈통과 탄생을 보면 말 그대로 설화다운 이야기이다. 그러면 주몽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설화상의 인물인가?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중국의 왕망(王莽)이 세운 신나라(9~25) 무렵, 즉 기원 전후 시기에 '고구려왕 추(騶)'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광개토태왕비에는 시조를 '추모왕(鄒牟王)'이라고 하였다. 추모는 주몽과 서로 통하는 말이다. 바로 이 추모왕이 앞에서 본 '고구려왕 추'와 통한다. 즉 추모왕이라고 불린 고구려 왕이 실재하였던 것이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20.
  • '고구려' 국호 유래를 보면, 통일 한국 국호 보인다-매경 임기환 입력 : 2016.09.16 06:01 [고구려사 명장면-2] 고구려의 성립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기원전 37년 주몽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렇다고 '고구려'란 국명이 이때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이 지역에 4개의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그중 현도군이 있다. 그런데 현도군 아래 3개 현 가운데 '고구려현'이란 이름이 보인다. 이때가 기원전 107년이다. 고고 자료를 보면 압록강과 혼강 일대에서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여러 정치집단이 성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고구려라고 부르는 세력이다. 고구려를 세운 종족은 보통 예족(濊族), 혹은 맥족(貊族), 혹은 예맥(濊貊)이라 중국 역사책에 기록된 종족과 관련이 있다고 보..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19.
  • 고구려사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역사인가-매경 임기환 입력 : 2016.09.02 06:01 [고구려사 명장면-1] '고구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혹은 단어가 무엇인가? 아마도 만주대륙, 광개토왕, 철갑 기마무사, 광대한 영토 등을 첫손에 꼽을 것이다. 또는 중국의 통일제국인 수나라·당나라와의 전쟁, 예컨대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전투 등이 기억 나기도 할 것이다. 맞다. '광활한 만주 대륙, 말달리는 고구려인의 상무정신과 진취적인 기상' 같은 이미지는 상투적이라고 할 만큼 많이 이야기된다. 이런 인상들이 고구려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고구려 역사의 일면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런 막연한 인식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로부터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짚어보기에 앞서 과거 고구..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9. 19.
  • 韓법원 미쓰비시 자산압류에…日정부 "국제법 위반"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8. 21.
  •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78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매일경제신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8. 16.
  • `봉오동 전투` 홍범도장군 유해 광복절날 돌아온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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