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17:59ㆍ★★★★경제&기업 ISSUE/경제ISSUE
탄소감축 중간목표 상향 논란
EU 1990년, 美 2005년 출발
한국은 2018년에 시작했는데
2050 탄소중립 목표는 같아
EU 年1.7% 감축도 이행못해
한국 年3.1% 저감은 비현실적
산업계 협의 없이 이행 불가능
달성 가능한 계획부터 세워야
◆ 탄소중립 정책 급발진 ◆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존 26.3%에서 35%로 크게 높이면서 국내 기업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 미국 등 선진국이 우리보다 최장 28년이나 먼저 탄소배출 감축에 돌입한 반면 탄소중립을 달성할 목표 시점은 2050년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100m 달리기에서 최강자 우사인 볼트에게 먼저 출발할 기회까지 준 뒤 경쟁하게 만드는 꼴"이라고 탄식했다. 뒤늦은 출발에 초조해진 정부와 국회가 2030년의 중간 목표를 과도하게 높이는 바람에 국내 제조업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장기적으로 사업장의 해외 이전까지 벌어지면 국내의 산업 공동화,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마저 우려된다.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EU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탄소배출량이 정점을 기록한 1990년 대비 연평균 1.7%의 탄소만 감축하면 된다. 소요 기간이 60년에 달하기 때문에 그만큼 여유가 있다.
미국은 2005년 탄소배출의 정점을 기록한 이후 45년간 연평균 2.2%, 일본은 2013년 정점 이후 37년간 연평균 2.7%씩 탄소배출을 저감하면 된다. 반면 2018년을 기준점으로 삼은 한국은 32년간 연평균 3.1%를 감축해야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되게 된다.
국가별 NDC를 보면 수치상 우리나라가 뒤져 있는 건 분명하다. 올해 4월 개최된 기후변화정상회의에서 2030년 NDC에 대해 미국은 50~52%, EU는 55%, 일본은 46%를 각각 제시했다.
문제는 탄소배출 감축이 해마다 동일하게 선형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다. 관련 기술이 상용화되는 2030년 이후에나 탄소배출 저감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호정 고려대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는 "앞으로 남은 8~9년은 계량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미래 기술이 아니라 현존하는 기술로 감축이 이뤄진다"며 "NDC 상향 조정에 대한 영향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상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 EU의 탄소배출량은 1990년 대비 73%로 불과 27%를 줄이는 데 그쳤다. 매해 탄소배출량을 동일하게 줄였다면 46%는 감소했어야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연평균 3.1% 감축을 그대로 대입해 12년 뒤인 2030년 35% 이상 감축이라는 기계적인 목표를 세웠고, 이를 그대로 법제화했다.
선진국마저 아직까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데 선진국보다 탄소 저감 기술력마저 현저하게 떨어지는 한국이 과도한 목표를 강제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 비중이 높다. 제조업 내에서도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탄소배출이 많은 업종이 전체 수출의 2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동기 한국무역협회 혁신정책본부장 역시 "최근 선진국들이 공급망 안정을 위해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과도한 탄소중립 목표 설정은 국내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고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촉발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을 전제로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막대한 전환 비용이 발생된다는 점도 문제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에서 전환 비용만 2050년까지 400조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천문학적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때 선택지는 하나다. 스스로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다.
조경석 한국철강협회 전무는 "감축 여력을 넘어선 NDC를 설정할 경우 철강 산업은 감산이 불가피하다"며 "전후방 산업의 연관 효과가 높은 철강 산업이 감산에 들어가면 주요 산업의 생산 차질과 고용 감소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기영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석유화학 사업은 신증설이 꾸준히 이어지는 성장산업으로 탄소배출량은 불가피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비교적 단기인 2030년 NDC 목표를 산업계와 협의해 우선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며 "다음 세대가 주역이 되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산업계도 이미 신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정책 지원에도 적극 나서 목표 달성에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업적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제대로 된 '국가백년지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우람 기자 / 박윤구 기자 / 최근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신문 21.09.06 3면
상기 콘텐츠는 매일경제신문에서 개인적으로 발췌한 것입니다. 무단 복제/배포를 금지 합니다.
'★★★★경제&기업 ISSUE > 경제ISS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만원으로 FAANG 분산투자 가능…지갑 얇은 MZ세대 솔깃-매경21.09.13 (0) | 2021.09.13 |
---|---|
`수출 효자` 반도체 자동차 벌벌 떤다...도대체 무슨 일이... - 매경 21.09.06 (0) | 2021.09.12 |
"임대료 없어도 그만" 현금 부자들 상가건물 `줍줍` 경매 나섰다 - 매경 21.09.04 (0) | 2021.09.05 |
[Money & Riches] `파월의 시간표` 나왔다, 성장株로 쏠리는 시선 - 매경 21.09.03 (0) | 2021.09.05 |
[단독] 원전 6기 전력이 변전소도 못가보고 허공으로…전국에 널린 `유령 태양광` - 매경 21.09.03 (0) | 202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