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Outlook] "성장둔화는 오히려 좋은 징후"…美 경제학자의 이유있는 도발-매경210923

2021. 9. 24. 14:08★★함께 생각해 봅시다

`성장의 종말` 저자 디트리히 볼래스 휴스턴大 경제학과 교수

개인의 생활 수준 향상되며
출산 늦추자 인적자본 줄고
상품보다 서비스 지출 늘어
경제성장 속도 늦춰진 원인

GDP 규모가 줄어든게 아닌
단지 성장속도가 느려진 것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 출처 : 매일경제신문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코로나19를 감안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재추정'이라는 BOK 이슈노트를 발간하며 새롭게 추산된 잠재성장률을 발표했다. BOK 이슈노트에 따르면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은 추정치보다(2019년 8월 기준) 0.3~0.4%포인트 낮은 2.2% 내외로 추산됐다. 2021~2022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로 추정됐다. 한국은행은 2021~2022년 국내 잠재성장률이 2019~2020년보다 낮아진 이유에 대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고용사정 악화, 서비스업 생산능력 저하 등을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내다본 잠재성장률을 기반으로 향후 경제성장이 둔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경제성장 둔화가 '성공의 신호(sign of success)'라고 도발적인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 바로 디트리히 볼래스 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다.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볼래스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경제성장 둔화가 좋은 징후라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볼래스 교수는 "경제성장 둔화의 근본적 원인은 인구통계 변화, 그리고 소비자들의 구매가 상품 구매에서 서비스 구매로 바뀐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두 요인이 "개인의 생활 수준 향상으로 초래됐다"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50~2000년 연평균 2.25%였는데 2000~2006년에는 1%였다. 21세기에 들어와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는 사람의 생활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연기하는 사람이 많아져 인적자본 증가율이 하락한 것이 경제성장 둔화의 원인이라는 게 볼래스 교수의 주장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상품 구매에서 서비스 구매로의 전환이다. 에어컨,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상품이 집에 갖춰진 후 사람들은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나 온라인 교육 서비스 등에 비용을 지출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출간된 저서 '성장의 종말(Fully Grown: Why a Stagnant Economy Is a Sign of Success)'에서 볼래스 교수는 일반적으로 상품생산 산업에서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보다 서비스 산업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이 낮아 이러한 구매 변화가 경제성장 속도 저하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볼래스 교수가 저서 집필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 자료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새로운 시각으로 경제성장 저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다음은 볼래스 교수와의 일문일답.

―'경제성장 둔화는 나쁘다'는 보편적 인식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GDP 성장률을 기반으로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GDP 성장률이 (과거 수치보다) 낮으면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람들은 GDP 성장률을 실질 GDP 수준과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GDP 성장률이 낮게 나오면 실질 GDP 규모가 작아졌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GDP 성장률 저하는 GDP 규모가 느린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부 사람들은 낮은 GDP 성장률이 국가가 빈곤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미국·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들은 GDP 성장률이 낮더라도 부유한 국가들이다.

―'성장의 종말' 집필에 사용된 데이터는 대부분 미국 경제 지표들이다. 경제성장 둔화가 '성공의 신호'라는 주장이 다른 국가에도 적용될까.

▷다른 국가에서도 경제성장 둔화가 '성공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OECD 가입국에서도 과거 경제성장의 성공이 가져온 생활 수준 개선으로 인구통계가 변화하며 이로 인해 인적자본 증가율이 하락했다. 물론 빈곤국에는 이 주장이 적용되지 않는다. 빈곤국에서는 느린 경제성장이 실패의 신호로 작용한다. 경제성장 둔화가 성공의 신호라는 주장은 부유국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저서에서 세율 증가가 미국 경제성장 둔화에 미치는 영향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개인 소득세율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낮다. 그리고 다수 자료들을 종합한 결과, 사람들이 일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세율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일을 할지에 대한 대부분의 결정은 개인의 나이, 결혼 및 자녀 여부 등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2001년과 2003년에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개인 소득과 법인 소득에 대한 감세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오히려 해당 시기에 미국의 경제성장은 둔화됐다. 1940년부터 1960년 사이 미국의 최고 세율은 90%대였지만 같은 시기에 오히려 경제성장률은 높아졌다.

―최근 미 민주당 소속 하원 의원들은 법인세 세율을 21%에서 26.5%로, 부유층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37%에서 39.6%로 인상하는 증세안을 제시했다. 미국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앞서 말했듯 과거 미국에서 법인세가 큰 폭으로 낮아졌을 때 GDP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법인세 인하는 단지 기업들이 더 큰 이익을 거두게 했다. 이렇게 기업들이 창출한 이익은 주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주주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지 않았다. 적어도 데이터상에서는 주주들의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경제성장 둔화를 불러온 인적자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민(immigration)을 제안했는데.

▷이민만큼 인적자본 문제를 해결하는 빠른 방법은 없다. 한국, 이탈리아, 미국 등 국가들이 오늘부터 출산율을 높이더라도 1인당 GDP 성장률 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린다. 단기적으로 인적자본을 확대하기 위한 유일한 의미 있는 방안이 이민이다.

[윤선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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