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 21:13ㆍ★역사 & 오늘
조선후기 유재건`이향견문록`
308명의 전기, 10권으로 구성
김정호·서기·김홍도·조수삼등
중인부터 천민·여자·스님까지
다양한 신분의 인물얘기 수록
중인층 이하도 양반과 대등한
평가 받아야함을 은연중 강조
이책 편찬의도·인물 떠올리며
중인문화 중심지 서촌 가볼만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서촌 지역은 조선시대 중인(中人) 문화의 중심 공간이었다. 양반들이 북촌에 집단 거주한 반면 중인들은 서촌이나 청계천 일대에 주로 거주하였다.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했던 계층인 중인은 주로 중앙관청에 근무하면서 행정 실무를 맡은 서리(胥吏)나, 기술직에 종사한 역관, 의관, 율관 등을 지칭하였다. 양반의 소생이지만 첩의 아들인 서얼, 지방의 향리도 중인에 포함되었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중인은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채 사회의 주변부를 떠돌았다.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중인들은 신분 상승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고, 그들의 역사와 전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19세기에 편찬된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기(壺山外記·1844년)'와 유재건(劉在建·1793~1880)의 '이향견문록(1862년)', 이경민(李慶民·1814~1883)의 '희조일사(熙朝佚史·1866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 저술을 통해 중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는 한편, 역사적으로 이름을 빛낸 중인 선배들 행적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중에서 '이향견문록'은 가장 많은 308명의 인물을 포함하고 있는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김정호는 자신의 호를 고산자(古山子)라 하였다. 그는 본래 공교한 재주가 많았고 특히 지도학에 취미가 있었다. 그는 두루 찾아보고 널리 수집하여 일찍이 '지구도'를 제작하고, 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는데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새겨 세상에 펴냈다. 그 상세하고 정밀한 것은 고금에 짝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한 질을 구해 보았더니 진실로 보배로 삼을 만한 것이었다. 그는 또 '동국여지비고' 10권을 편집했는데 탈고하기 전에 세상을 떴으니 정말 애석한 일이다." 위대한 지도학의 대가였지만 중인 신분이었던 관계로 기록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 김정호의 일생은 '이향견문록'으로 인하여 재발굴된 것이다. '이향견문록'에는 김정호 이외에도 천민 출신 학자 서기(徐起), 역관 홍순언(洪純彦), 서예가 한호, 화원 안견(安堅) 김득신(金得臣) 김홍도(金弘道), 시인 조수삼(趙秀三) 등 이름은 전해왔지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다른 기록물에서 쉽게 그 일생을 확인할 수 없었던 인물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효자, 열녀, 호걸들이 살았던 모습도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의 행적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는 점도 이 책이 지니는 큰 장점이다.
이향(里鄕)이란 '백성들이 사는 동네'를, '견문록'은 '보고 들은 기록'을 뜻하는데, 즉 이곳저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란 뜻이다. 총 289편에 걸쳐 308명의 전기가 10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양반 사대부와 같이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중인을 비롯하여 상민, 천민, 노예, 신선, 도사, 점쟁이, 여자, 스님 등 다양한 신분층 인물 이야기가 주로 수록되어 있다. 유재건이 '이향견문록'을 편찬한 의도는 벗인 조희룡이 쓴 서문에서, "친구인 유재건이 나와 같은 심정에서 여러 사람의 문집 속에서 더듬고 찾아 모아 이미 기록이 있는 사람을 몇 명 얻었고, 입전(立傳)된 것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전을 지어 … 정성스럽게 한 책을 만들어 제목을 '이향견문록'이라 하였다"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나 있다. 10권의 구성은 학행(學行), 충효(忠孝), 지모(智謀), 열녀, 문학, 서화, 의학, 잡예(雜藝), 승려, 도가류(道家類)로서, 이 중에서 효행, 지모, 열녀, 문학, 서화 등 양반의 덕목이나 교양에 해당하는 요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중인층 이하 인물들에 대해서도 양반과 대등한 사회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을 은연중에 강조한 것이다. 조선후기 중인 문화의 중심지였던 인왕산과 서촌 일대는 필운대, 송석원, 청풍계, 수성동 계곡 등 현재에도 그들이 활동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이 많이 남아 있다. '이향견문록'을 편찬한 저자 의도와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 모습을 떠올리며, 이곳을 답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신문 21.10.02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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